데이터 경제 시대, 왜 ‘공공 주도 데이터’ 인프라가 산업 경쟁력의 핵심인가?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데이터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되었습니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석유가 경제 성장의 동력이었다면, 현대의 지능정보사회에서 데이터는 인공지능(AI)과 첨단 산업을 구동하는 21세기의 원유로서 그 가치가 한없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는 결정적인 척도가 되었습니다.

데이터가 지닌 잠재력을 온전히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파편화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정제, 관리할 수 있는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투자 비용과 장기적인 유지 관리 역량이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개별 기업이 독자적으로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표준화된 데이터 체계를 구축하기에는 경제적·기술적 부담으로 인하여 불가능하며, 이는 특정 기업의 데이터 독점이나 중소기업과의 격차 심화라는 부작용을 낳을 지도 모릅니다.

상술한 현실 속에서 유럽의 NOMAD나 미국의 MGI(Materials Genome Initiative)와 같은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범정부 또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접근을 통해 공공 주도의 데이터 공유 플랫폼을 구축함으로써 산업 생태계 전반에 통용될 수 있는 데이터 경쟁력을 쌓아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 데이터의 개방과 표준화된 관리 체계가 어떻게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관련될 수 있는 지 보여주었습니다.

동 사례를 바탕으로 개별 주체들의 각자도생식 데이터 확보를 넘어, 국가적 차원의 통합된 시각이 필요하며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그러한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공공이 주도하여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의 토양을 마련하고, 그 위에서 민간의 창의적인 혁신이 중단 없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공공 주도 데이터 인프라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 경제 시대의 진정한 주도권을 확보하고 미래 산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 부문 주도의 구체적 필요성

왜 대형 데이터 인프라의 구축과 운영은 민간이 아닌 공공 부문이 주도해야 하는 것일까요? 근본적으로 대형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는 막대한 예산 투입은 물론, 단기간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장기적인 투자가 필연적으로 수반됩니다. 단순히 자본의 논리로만 접근한다면 수익성이 낮은 기초 데이터나 공익적 데이터는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공공 주도의 인프라 구축이 필수적인 이유는 크게 네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픈 사이언스(Open Science)의 실현

데이터의 가치는 공유될 때 극대화되지만,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 기업이 스스로 공들여 쌓은 데이터를 무상으로 개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NOMAD나 Materials Project 등과 마찬가지로 CC(Creative Commons) 라이선스를 활용하여 비영리 목적으로 데이터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누구나 이를 활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공공 부문 협력 및 지원이 수반되었을 때 수행할 수 있는 공익적 임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EU의 Horizon 프로젝트 사례처럼, 개방형 연구 생태계를 통해 데이터의 활용 가치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든든한 기반이 됩니다.

글로벌 표준으로 확립되어 가고 있는 ‘FAIR 원칙’의 준수와 정착

데이터는 단순히 쌓아두는 것보다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실질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데이터 인프라 구축을 목표로 한다면, 모든 사용자는 데이터를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하고(Findable), 누구나 정해진 절차에 따라 접근 가능해야 하며(Accessible), 서로 다른 시스템 간에도 매끄럽게 연동되는 상호운용성(Interoperable)을 갖춰야 합니다. 나아가 지속적인 재사용(Reusable)이 가능해야 한다는 이른바 ‘FAIR 원칙’이 잘 지켜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엄격한 표준화를 산업 전반에 이식하고 질서 있는 데이터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 부문의 강력한 표준화 리더십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사회적 과제인 데이터 격차 해소 및 공정한 기회 제공

현재 데이터와 AI 기술은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보유한 일부 거대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질의 데이터에 접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역량 격차를 줄이고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다리가 됩니다. 공공이 구축한 데이터 인프라는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경제 주체에게 공평한 기회의 장을 제공함으로써,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고 국가 전체의 혁신 동력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결국 공공 주도의 데이터 인프라는 특정 주체의 이익을 넘어, 국가 산업 전체의 기초 체력을 다지고 디지털 포용성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민간기업이 마주하는 현실적 제약

공공의 역할이 강조되는 이유는 단순히 공익적 목적 때문만은 아닙니다. 민간 기업들이 데이터 공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 주도적으로 데이터를 개방하거나 공유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과 걸림돌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은 ‘영업 기밀 보호’의 문제입니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특히 최근들어서는, 기업이 보유한 데이터는 곧 그 기업의 독보적인 경쟁력이자 생존 전략 그 자체입니다. 제조 공정의 노하우, 고객의 행동 패턴, 신소재 레시피와 같은 데이터는 수십 년간의 시행착오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얻어낸 결과물입니다. 만약 이러한 데이터가 적절한 보호 장치 없이 외부에 노출될 경우, 기업은 시장에서의 우위를 한순간에 상실하게 될 뿐 아니라, 기업의 존립을 흔드는 치명적인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개별 기업에 자발적인 데이터 공유를 요구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려놓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가혹한 요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또한, 데이터 공유는 이제 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전략 기술의 문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최근 격화되는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반도체, 배터리, 양자 기술 등 핵심 전략 분야의 데이터는 국가의 명운을 결정짓는 안보 자산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핵심 기술 데이터가 공유 과정에서 해외로 유출되거나 부적절하게 활용될 경우, 이는 단순한 경제적 손실을 넘어 국가적 재난에 가까운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민감한 정보가 얽혀 있는 상황에서 민간 주도의 자발적이고 느슨한 공유 체계에만 의존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나 큽니다.

결국, 이러한 복합적인 제약 조건들로 인해 민간 영역에서의 자발적인 데이터 공유는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간 기업들이 자신의 소중한 자산이 유출될까 봐 전전긍긍하며 데이터를 폐쇄적으로 관리하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강력한 보안 체계와 신뢰할 수 있는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기업들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거래하거나 활용할 수 있도록, 안전한 데이터 거래 환경을 먼저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공공이 설계한, 신뢰할 수 있는 울타리 안에서, 기업들은 영업 기밀 유출이나 안보 위협에 대한 걱정 없이 데이터 기반의 혁신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공공 부문은 민간의 어려움을 해소해주는 동시에, 데이터 공유의 톱니바퀴가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공공 부문과 민간이 함께 하는 선순환 생태계, 허브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점은 공공과 민간이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하며 시너지를 내는 선순환 생태계의 구축입니다. 이 생태계에서 공공 부문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아두는 저장소를 넘어, 데이터가 원활하게 흐르고 가치를 창출하도록 돕는 중심축이자 ‘허브(Hub)’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즉, 공공이 고품질의 기초 데이터를 생성하고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토양을 만들면, 민간은 그 토양 위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접목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창출해 내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선순환 생태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요소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공공 부문이 신뢰할 수 있는 공정한 중재자로

데이터 생태계 안에는 수많은 민간 기업이 존재하며, 이들은 때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경쟁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특정 기업이 주도하는 플랫폼에는 경쟁사들이 데이터를 맡기기 꺼려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때 공공 부문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기업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각 기업의 데이터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공공이 제공하는 신뢰라는 인프라가 담보될 때, 비로소 민간 기업들은 안심하고 생태계에 참여하여 데이터를 공유하고 결합할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글로벌 협업 모델에 대한 벤치마킹하고 내재화

이미 해외에서는 공공 인프라를 중심으로 민간이 결합해 폭발적인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가 여럿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MGI(Materials Genome Initiative)는 Materials Project나 AFLOW와 같은 공공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민간 연구소 및 기업들과 유기적으로 연계함으로써 신소재 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모델을 참고하여, 국가 주도의 강력한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하되 운영 방식에 있어서는 민간의 창의성과 유연성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를 조성해야 합니다.

결국 ‘허브’로서의 공공은 민간의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장벽이 아니라, 민간이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야 합니다. 공공 인프라라는 튼튼한 뿌리에서 공급되는 양질의 데이터가 민간의 기술력이라는 줄기를 타고 흘러갈 때, 우리 산업계 전체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혁신적인 서비스와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공공과 민간이 함께 그려나가야 할 데이터 경제의 미래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 미래 산업 혁신을 위한 제언

데이터 인프라는 단순히 방대한 정보를 모아두는 정적인 창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데이터를 연료로 삼아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산업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하는 강력한 엔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디지털 패권 경쟁 시대에서 데이터 인프라의 수준은 곧 그 국가의 산업적 경쟁력을 의미하기 때문 입니다. 정부와 공공 부문이 앞장서서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기초 인프라를 닦고, 민간이 그 위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그리고 공공의 안정성과 민간의 역동성이 결합될 때, 비로소 우리는 글로벌 AI 시장과 데이터 경제 체제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터 주권을 확고히 하고 국가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공공 주도 데이터 인프라 구축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래 세대를 위한 생존 전략이자, 대한민국이 디지털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반드시 가야만 하는 필수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진정한 데이터 경제 시대로 도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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